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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 눈길 위에서-한희원..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다시 봄은 오겠죠?

등록일 2015.12.23조회수 2055


최근 방문한 섬진강변 마을의 옹기종기 붙어있는 집들.



J, 시간과 시간의 흐름 속을 지나가는 생은 어떤 의미인지요. 우리는 시간을 떠돌다 사람을 수 없이 만나고 새로운 장소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만남은 잔잔한 행복을 주기도 하고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시간은 급회전을 하여 전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긴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쁘기도 하지만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을 걷다 보면 우리의 생을 변화시키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만남과 장소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저곳을 떠돈 후 그들의 작품세계가 변화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이 묻어 있는 장소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호흡과 영혼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흡과 영혼이 스며있는 장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가 되고 그곳만의 역사가 형성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고 그러한 만남은 고요히 흐르는 침묵의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게으른 영혼을 깨우며 자신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J, 나는 히말라야 설산을 몇 번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설산을 오르며 신을 느끼고 눈 덮인 설산의 언덕 위에 앉으면 신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티베트고원의 하얀 길을 걸으며 고독으로 이어지는 가장 깊은 상처 속에 그어진 흰줄을 보게 됩니다. 흰줄이 마치 말라붙은 늙은 노인의 핏줄 같습니다.

죽음, 사랑, 예술도 한낱 한 줄로 그어진 길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아픔이 그만큼 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지상에 존재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생은 참 아름답고 가혹합니다.

길을 걷다가 산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강을 만나고 어떤 때는 강가의 나무를 만납니다. 낮은 언덕에 피어있는 야생화 향기에 취한 날은 아름답고 홀로 들녘을 걷다 폭풍우를 만나면 가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묵묵히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서 있을 것입니다.

J, 나는 생의 길을 걷다 화가의 길을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아직도 미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얀 설국으로 가는 기차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차에 앉아 침묵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은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고, 나를 위로하는 작업이 나처럼 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아닐는지요.

J, 오래전 몽골의 사막에서부터 시베리아 벌판을 횡단하여 바이칼까지 가는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몽골의 아르드 사막에서 평원의 끝에서 끝까지 펼쳐진 별들을 보았습니다. 모래밭에 누워 한 동안 별을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흘러 가슴을 적시 웁니다. 별과 별로 이어지는 은하수의 무리들. 우리들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의 흔적들이 어느 별사이를 떠돌고 있을까요? 아, 별들, 별들, 그 별들….

평원의 별을 가슴에 담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방향과는 다른 기찻길입니다. 보드카에 취해 자작나무 숲과 마을들이 흐릿하게 스치듯 지나갑니다. 여행길은 가을을 향해 서있지만 나는 설국으로 가는 꿈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라라를 그리워하며 더 이상 하얄 수가 없는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도착한 눈 덮인 외딴집. 지바고가 그 집의 먼지 묻은 낡은 창에 낀 성에를 닦듯이 나도 기차의 창에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 봅니다.

J, 낡은 이층 침대가 있는 열차를 타고 26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잠들어 있는 땅’이라고 불리는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12월의 혁명 당원들의 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니콜라이 1세는 그들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로 유배를 보냅니다.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부릅니다. 이후 데카브리스트들은 이르쿠츠크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킵니다.

모스크바에 남은 귀족의 딸들인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남편을 따라 유형의 땅 시베리아 벌판을 향해 기약 없이 떠나게 됩니다. 이혼이 금지된 법조항을 고쳐 이혼을 허가했는데도 여인들은 유배를 떠난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로 길을 떠납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요. 버리고 온 줄 알았던 평원의 별들이 이곳에서 사랑의 힘으로 다시 살아 빛납니다.

J, 세상이 비록 시끄럽고 혼탁해도 가을이 남긴 낙엽 위에 은빛 눈이 쌓여 황홀하게 눈부신 설국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이 오면 매화도 피고 찔레꽃도 피겠지요. 우리들이 떠나간 후에도 말입니다.

J, 인생의 설국으로 가는 열차의 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기차에 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소리 없이 스쳐지나갑니다. 밤 내내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립니다.

* 한희원
-조선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33회, 뉴욕 아트 엑스포, 이스탄불 이르크 미술관 기획전, 파리 유네스코 세계본부 기획전 등 단체전 참여
-대동 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원진미술상 등 수상
-신경림 시인(처음처럼), 곽재구 시인(낙타풀의 사랑), 임의진 목사(참꽃피는마을) 등에 그림삽화 및 영화 ‘친정엄마’ 테마그림
-남구 굿모닝 양림축제 조직위원장


광주일보 /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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